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윌리엄 매킨리 (문단 편집) === 대통령 선거 === 화려한 경력과 명성으로 [[1896년]] 대선이 다가올 당시 그는 가장 강력한 공화당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당시 민주당에서는 [[윌리엄 J. 브라이언]]이 경쟁자로 나섰다. 매킨리는 당시 [[그로버 클리블랜드]] 정권의 자유무역이 실패했다고 까면서[* 다만 상기되어있듯 본인도 보호무역을 장려하는 매킨리법을 밀어붙였다 불황을 초래한 바 있었다.] 보호무역과 함께 화폐 단위의 가치가 일정한 금 가치와 결부되어 있는 [[금본위제]]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브라이언은 이 제도가 경제가 어려울 때 (금의 유출에 따라) 화폐값이 올라가 임금이나 가격이 떨어져서 오히려 부유층에게만 유리하게 된다는 점을 주장하며 필요할 때마다 자유롭게 새 돈을 찍어낼 수 있는 은화제도를 핵심 현안으로 삼았다. 이 제도는 돈의 양이 불어서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지만 농민과 노동자의 빚 가치도 줄어들어서 오히려 빈민 노동자층에게 유리하고 부유층에게는 불리한 제도였다. 1896년 대선은 이런 경제정책이 주요 쟁점이 되었는데 [[윌리엄 J. 브라이언|브라이언]]은 연설을 통해 [[월가]]의 은행업자들을 경제 악화에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고, 역사에 길이남을 연설이라 평가되는 '금십자가 연설' [* '''"당신들은 노동자의 이마에 가시면류관을 씌울 수 없습니다! 인류를 금 십자가에 못박을 수도 없습니다!"''']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공화당은 브라이언을 기업을 파괴시킬 과격파라고 비난했다. 선거 초반에는 엄청난 박빙이었다. 각 주별로 [[여론조사]]가 시행되지는 않아서 당시에는 후보간의 유세장 인원 동원력을 가지고 선거 추세를 비교했는데, '''선거 초반까지는 민주당의 브라이언이 훨씬 사람을 많이 모았다'''. 그러다보니 자본가들은 이런 브라이언에게 위기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고, 당시 --셔먼 반독점법을 통과시킨-- 공화당을 지지한답시고 엄청난 선거 자금을 후원한다. 가장 많은 돈을 후원한 곳은 [[존 피어폰트 모건|J. P. 모건]], [[앤드루 카네기]], [[존 데이비슨 록펠러]] 3명으로, 이 세명이 매킨리한테 후원한 돈만 1,200만 달러를 넘었다. 1896년 대선 때 사용한 매킨리의 총 정치자금은 1,500만 달러 수준으로, 당시 경쟁자인 브라이언은 55만 달러만 선거자금으로 지출[* 1896년 이후로도 특정 [[재벌]] 기업가가 특정 정치인을 후원하는 방식으로 정치자금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이 반복되자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시절에 대선 선거자금 총액을 제한하는 제한적 선거공영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2008년]] [[미국 연방 대법원]]의 [[슈퍼팩]] 허용 판결 때, 선거자금의 상한선을 두고 있는 제한적 선거공영제도 같이 위헌 판결을 받고 폐지됐다. 그리고 그 이후 미국의 선거자금은 미친듯이 불어나는 중이다.]했다. 후원을 주도한 사람은 J. P. 모건인데, 그는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과 이미 1896년 대선 이전부터 상당한 충돌을 겪어왔고, 브라이언이 당선되면 손해볼게 뻔한지라 카네기와 록펠러를 끌어들여 1896년 대선의 대규모 물량공세를 주도하게 된다. 예를 들어 브라이언이 사람들을 많이 모았다는 기사가 쏟아지자, JP모건은 자사 은행들의 [[거래처]]를 모조리 압박하여 거래처의 임직원들을 매킨리 대선 유세장에 총동원했다. 그리고 심지어, 일부 주에서는 매킨리를 찍으라고 '''J. P. 모건 소속 임원들이 대놓고 선거 당일날 투표소 앞에서 유권자들을 겁박했다'''(...). 공화당이 직접 하지는 않았다지만, JP모건이 대놓고 [[부정선거]]를 저지른 것. 그리고 어찌됐든 정성(?)이 통했는지 매킨리는 브라이언을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896_Electoral_Map.png|width=300]] 면적상으로는 민주당이 더 넓지만 북부 공화당 지지주들의 인구와 선거인단이 더 많아서 최종 선거인단 투표 결과는 271:176이 나왔다.[* 여담으로 분포도를 보면 알겠지만 현대의 지지와 '''정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시간이 흐르며 보수에 가까웠던 민주당이 진보로 진보에 가까웠던 공화당이 보수로 바뀌어 주별로 성향은 거의 그대로인데 두 당의 성향이 변하다 보니 지지하는 정당도 반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